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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국적 프랑스
출생-사망 1840년~1917년
제작연도 1880년 ~ 1882년경
종류 조각
기법 조각, 석고(sculpture (technique),plâtre,)
크기 278.6 x 173 x 139.2 cm
소장처 파리 오르세 미술관

 

로댕의 가장 극적인 작품 중 하나인 <우골리노>는 원래 걸작 <지옥의 문>을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 33번째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자신의 자식들과 함께 지옥에 갇힌 우골리노의 비극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로댕은 단테의 놀라운 상상력을 조각으로 충실하게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13세기 이탈리아는 여러 도시 국가들로 분열되어 끊임없는 전쟁을 벌이던 혼란스러운 시대였습니다. 피사의 귀족이었던 우골리노 백작은 권력욕에 눈이 멀어 자신의 당을 배반하고 루지에르와 손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루지에르의 배신으로 우골리노 백작은 두 아들과 세 명의 손자와 함께 피사의 탑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탑의 열쇠는 강에 버려졌고, 그들은 희망 없는 기아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하나둘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우골리노 백작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끔찍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바로 자신의 자식들의 시신을 먹은 것입니다. 결국 그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았지만, 교회가 금기시하는 행위를 저지른 죄로 지옥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우골리노>는 눈이 먼 우골리노가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 죽어가는 아이를 끌어안으려 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한 아이는 우골리노의 몸에 매달려 있고, 이미 숨진 아이는 그의 다리 옆에 쓰러져 있습니다. 이처럼 끔찍한 장면을 소재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로댕은 조각상에 놀라운 생동감과 역동성을 불어넣었습니다.

 

특히 굶주림에 지쳐 자신의 아이들을 먹으려 하는 우골리노의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강렬한 힘과 긴장감을 드러냅니다. 쇠약해 보이는 대신 근육질의 몸으로 표현된 우골리노는 마치 맹수와 같은 야성적인 에너지를 뿜어냅니다. 이는 로댕이 추구했던 '살아 움직이는 듯한 표현'과 '유기적인 형태의 결합'을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우골리노>가 단테의 <신곡>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인간성의 상실'이라는 주제 의식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로댕이 인물의 역동적인 육체 표현에 지나치게 몰두한 나머지, 전체적인 비극성과 절망감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파리 오르세 미술관

홈페이지(site): https://www.musee-orsay.fr/fr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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